[이론] 극진카라테



카라테지식

  

[이론] 극진카라테

연맹사무처 0 10 03.20 11:57
아마 인류 무술사에 있어서 최영의(崔永宜, 1923-1994, 대산배달, 大山倍達=오오야마 마쓰다쓰)라는 인물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검성(劒聖) 미야모토 무사시와 비견되어 무신(武神)으로까지 일컬어지며 이러한 평가는 전 세계인, 심지어 타류 무술가들에게도 비슷하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존재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에 흥미를 가졌던, 그래서 강함의 극한에 도전하기를 즐겼던 인물이며 그에 대한 평가도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강함이다.

대개 무술계에는 검증되지 않은 전설이 난무한다. 소림의 달마, 무당의 장삼봉, 당랑권의 왕랑이나 이서문, 영춘권의 엄영춘, 무영각의 황비홍, 정무문의 곽원갑등등 믿지 못할, 검증할 수 없는 전설이 많고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흔히 이서문과 마이크 타이슨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시라소니와 누가 붙으면? 이러한 유치찬란한 논쟁이 종식되지 않는 이유는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논자(論者)도 최영의에 대해서만은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로 강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싸움으로써 자신의 강함을 실증했고 그의 싸움은 기자와 관중이 지켜보는 데서 이루어졌으며 싸움의 장면은 사진과 필름으로 보존되었다. 결국 인간 가운데는 적수가 없어서 짐승과 싸우기도 했던 딱하게도 괴팍한 인물이 그였다.

극진 카라테의 역사와 연혁은 너무 잘 알려진 얘기라 쓸 내용이 별로 없다. 다만 최영의에 의해 카라테라는 무술이 실전의 장으로 내 던져 졌고 그 싸움을 통해 변증법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극진에 영향을 준 수많은 타류 무술이 있지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에타이다.

무에타이 역시 강함을 제1의로 하는 무술이고 종종 타류 시합을 위해 세계의 강자를 초청하는데 카라테가들도 초청받아 무참히 쓰러진다. 1954년 방콕의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당시 역대 최강으로 평가 받던 블랙코브라와 최영의의 대결이 성사되고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시합은 1회 2분 12초 만에 블랙 코브라의 턱과 갈비뼈가 부서짐으로서 끝났지만 이 경기에서 최영의는 적잖이 놀란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에 행한 미 대륙 격투 여행에서 자기 몸집의 두 배 가까이 되는 헤비급의 레슬러, 복서들을 모조리 들것에 실어 내보낸 최영의로서는 자기와 비슷한 체격의 이 챔피언의 격렬한 발차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무에타이의 기술 중 쓸 만 하다고 생각되는 것과 트레이닝 방법론을 도입한다. 현재 극진의 로우킥, 회초리로 감아 돌리 듯 차 넣는 로우킥은 무에타이의 영향으로 보인다. 트레이닝 방법도 미트 치기, 펀칭볼 등을 도입한다. 그 이전에는 카라테의 수련도구는 마키와라 일색이었다.

이후 극진과 무에타이간의 시합은 계속된다. 1964년 제자 구로사키 겐지가 동료 공수가 두 명과 함께 벌인 3대 3 시합에서 2대 1로 이겼지만 주장격인 본인이 KO 패하여 스타일을 구기고 그는 무에타이와 극진을 합하여 킥 복싱이라는 새로운 무술을 창시한다. 그의 네덜란드 제자들이 메지로, 보스, 차쿠리키 도장, 세칭 킥복싱의 3대 명문이라는 이들 도장을 세우고 그 출신들이 지금 K-1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1974년 소에노 요시지가 타이 전역을 돌며 이름난 무에타이 선수들을 모조리 KO로 제압하고 어둠의 무에타이 제왕이라는 레이바에게 도전하지만 레이바가 시합 전 죽음으로써 대결은 무산된다. 소에노 역시 무에타이에 영향 받아 그래플링까지 허용하는 자신의 유파 시도카이칸(사도회관, 士道會館)을 창립한다.

필자가 대 무에타이 전적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단한 업적이기 때문이다. 그 시합은 적지에서, 자신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심판과 관중 앞에서, 링이라는 생소한 환경 하에서, 글러브를 끼고, 무에타이 룰로 무에타이 선수와 시합을 해서 이긴 것이다. 지금까지 극진을 제외하고는 룸피니나 라차담넨에서 무에타이를 이긴 입식 무술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현재 전 세계 입식 무술은 어떤 형태든 극진과 무에타이와 관계가 있다. 유력한 경쟁 상대가 서로를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진은 이후 약간의 침체기가 있었으나, 2대 관장으로 취임한 문장규(文章圭= 松井章圭, 마쓰이 쇼케이 혹은 마쓰이 아케요시) 의 문화교류 선언으로 제 2 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s://ajurnak.tistory.com/entry/가라데의-기원 [蓮花中君子者也]

Comments

   카라테 유파별 시조 및 설명001.png



Category
방문통계
  • 현재 접속자 3 명
  • 오늘 방문자 42 명
  • 어제 방문자 63 명
  • 최대 방문자 79 명
  • 전체 방문자 3,190 명
  • 전체 게시물 143 개
  • 전체 댓글수 4 개
  • 전체 회원수 13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