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테(手)의 명인들



카라테지식

  

[이론] 테(手)의 명인들

연맹사무처 0 31 03.20 11:23
오키나와테의 명인들이며 일본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후에 설명함. 오키나와의 명인들은 대부분 몰락한 류쿠왕국의 귀족의 후예들이었다. 참고로 그들의 생몰(生歿) 연대에 대해서도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옴을 밝혀둔다.

사쿠가와 간가(1762-1843)
슈리 출신으로 공상군으로 부터 중국 권법을 배우고 카타를 수련의 한 요소로 도입. 쿠샹쿠(공상군, 公相君)형과 파싸이(발새, 拔塞=밧싸이)형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마쓰무라 소곤(1809-1899)
사쿠가와의 제자로 슈리테의 창시자. 어릴 때 한학을 배웠고 글씨에도 능하다고 한다. 중국 복건성에 세 차례나 여행, 추안파(권법, 拳法=일본어 발음은 켐포)를 수업하였으며 류쿠왕실의 무술 교사로 활동하였다. 도장훈(道場訓)을 처음 사용했으며 그로부터 카라테가 지금과 유사한 형태가 되었다. 류쿠 왕으로부터 무사칭호를 받았고 확실하진 않으나 나이푸안친(내보진, 內步進=나이한치)형을 창안하고 파싸이 다이(大), 쿠샹쿠 다이(大) 버전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가 이토스와 아자토인데 이 둘은 후나고시의 스승이 된다.

마쓰무라 고사쿠(1828-1898)
토마리 출신으로 기코 유쿠, 기신 데유라에게서 토마리테를 배웠고 봉술, 창술에도 능했다고 한다.
사쓰마 사무라이를 맨손으로 대적, 그를 물에 집어 던져 버리고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그 후 수배자가 되어 도피생활을 하다 명치시대에 복권. 이토스에게 토마리테를 가르치고 사쓰마 사무라이와 싸운 일로 오키나와사람들 사이에 영웅화 된 인물.

이토스 야스쯔네 (絲洲安恒, 1831-1915)
마쓰무라 소곤으로부터 슈리테를, 마쓰무라 고사쿠에게서 토마리테를 전수받았고 근대 카라테의 원형을 만들었다. 카라테를 학교체육으로 도입하였고(1905) 가장 대중적인 카타인 피난(평안, 平安=헤이안) 1단-5단을 창시하였다. 학교체육의 대중성과 수련의 효율성을 위해 쉬운 타를 창안한 것이며 그때까지 연결된 긴 카타였던 나이한치를 1, 2, 3단으로 쪼개고 밧싸이와 공상군 카타의 쇼(小) 버전을 개발했다. 이토스 때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카라테가 지상으로 나타날 수 있었으며 권성(拳聖)으로 불릴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또 대단한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친구인 아자토 야스쯔네와 함께 후나고시 기찐을 가르친다.

히가오나(東恩納)간료(1853-1915)
오키나와 말의 발음으로는 히가쇼나라고 하며 나하 출신으로 아라가키 세이쇼(1840-1920)라는 인물로부터 나하테를 배웠고 1870년대에 약 3년간 중국 복건성에 무술유학을 하면서 류 쿠류라는 중국인 사부로부터 백학권을 전수 받음. 그 제자인 마부니 겐와(摩文仁 賢和)와 미야기 초준(宮城長順)은 각각 시도류와 고쥬류를 창시한다.

출처: https://ajurnak.tistory.com/entry/가라데의-기원 [蓮花中君子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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