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슈벽, 가라테 그리고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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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슈벽, 가라테 그리고 태권도

연맹사무처 0 8 03.22 16:06
| 책소개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테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정작 가라테의 뿌리는 우리나라 고유무술인 슈벽치기(수박, 手搏)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태권도 역사 서적이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 가라테 역시 한국의 무술이라는 내용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태권도 인이 아니다. 태권도 역사를 정립하지 않고 방치되어 온 태권도계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못 해 직접 태권도 뿌리를 역사학적으로 규명해 재조명하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태권도계가 안고 있는 역사를 하루빨리 정립하는데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태권도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대표무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역사정립이 더는 늦춰져서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 목차

1장 | 역사로 보는 슈벽 |
1. 수박과 슈벽 10
2. 역사속의 슈벽 12
3. 구한말 슈벽의 모습 19
4. 독립군으로 이어진 슈벽의 맥 22
5. 태권도의 전통은 군사무예 25

 2장 | 문화로 본 우리나라와 오키나와 |
1. 오키나와와 우치나 29
2. 오키나와의 역사 32
- 삼산시대 32
- 제1상씨왕조 35
- 제2상씨왕조 39
- 류구왕국의 황혼 : 경장(慶長)의 역 40 류구왕국이 류구번으로 44
3. 우리나라와 오키나와의 교류
- 우산국과 오키나와 46
- 고려시대 삼별초와 오키나와
- 삼별초의 오키나와 망명 47
- 삼별초의 오끼나와 정착 55
- 조선(朝鮮)과 오키나와 57
- 홍길동 집단의 오키나와 도래 62
- 조선에서의 홍길동 행적과 오끼나와 이주 63
- 홍길동 집단의 오끼나와에서의 활동 69
4. 오키나와의 우리문화
- 일월오악도와 일월대해도 79
- 우치나말 속의 고려말 85
- 오키나와(沖繩)의 우다끼(御嶽) 86

 3장 | 가라데 그리고 태권도 |
1. 슈벽에서 가라테로 94
- 가라데와 가라(伽羅) 99
- 오키나와데에서 가라데로 111
2. 태권도의 형성과 전파 114
-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무예 수련 114
- 태권도의 형성 117
- 태권도의 명칭 제정 121
- 택견과 태권도 122
- 태권도의 세계 진출 125

결어- 망명과 귀환의 한국 무예 128



| 저자 및 역자소개 : 김산호 (지은이)

본명은 김철수, 호는 만몽(卍夢)이다.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1954년 부산일보의 시사만화가 민홍의 문하로 만화계에 입문해 1957년 <만화세계>에 독립군 이야기를 다룬 ‘황혼에 빛난 별’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1959년에 발표한 ‘라이파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만화가로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SF 만화로 불리는 이 작품은 22세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웅담으로, 당시 전쟁의 폐허에서 커가던 소년들에게 주인공 라이파이는 인생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앙정보부가 그의 작품을 놓고 사상 검증을 실시했고, 이에 환멸을 느낀 김산호는 그동안 쌓은 명성을 뒤로 한 채 1966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서 당시 최고의 만화출판사였던 찰튼코믹스의 전속 작가로 활동하면서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이후 직접 아이언호스 출판사를 창업해 전 세계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김산호는 만화 작업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했고, 사업에서도 끊임없는 창의적 시도로 주목받았다. 사업가로 활동하던 김산호는 1981년에 사업차 방문한 중국에서 과거 동북아를 지배하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이후 중국과 북한 등을 오가며 현지답사와 문헌연구를 했고, 이를 그림과 글로 남기는 작업도 병행했다. 그 결과물을 모아 <대쥬신제국사>와 <치우천황>, <단군조선> 등의 책으로 출간했고, 2013년에는 지난 30여 년의 연구를 바탕으로 25년에 걸쳐 그린 2,000여 점의 역사회화 작품을 엮은 역사 기록물 <대한민족통사>를 내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1996년 신한국인상, 200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11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코믹어워드를 수상했다. 지금도 용인과 중국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며 역사 연구와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 김산호(지은이)의 말

태권도, 그것은 확실히 한민족의 기(氣)와 혼(魂)을 담은 우리 고유의 무예로서 이미 지구
촌 191개국에 보급되어, 66,000개소의 도장에서 51,500명의 사범들이 활동 중이며, 무려 6천만 명 이상의 태권도인 들이 태극기 아래서 한국말로 구호를 외치며 수련에 경주하고 있으니 과연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기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196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한국에서 온 사범들이 서투른 영어를 구사하
며 벽안의 젊은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느라고 눈물겹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 도장의 간판들이 하나같이 태권도라는 이름 대신 ‘코리안 가라데(Korean-Karate)’라고 달아놓았던 것이다. 이때 만났던 사범들은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데에서 왔고, 가라데는 오키나와(沖繩)에서 발생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오해를 언젠가는 풀어 주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태권도인이 아니어서 이 작업 우선순위는 좀 더 급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문제나 왜곡된 한민족 고대사를 바로 잡는 문제들로 인해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우리 한민족사를 다시 복원하는데 끝없는 기력을 소진시키며 태권도와 가라데에 얽힌 엄청난 오해를 풀어 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언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출판사 ‘다모라’의 강민수 사장으로부터 자랑스러운
한국인 만화시리즈를 총감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 나는 멕시코(Mexico)의
전설적 신화를 창조한 문대원 사범의 눈물겨운 일대기와 미국 태권도계의 최선봉장 워싱턴
5의 준리(이준구) 그랜드 마스터, 그리고 캐나다의 이태은 사범 등의 이야기를 먼저 펴내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며 나는 다시 세계 태권도의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이들이 아직도 가라데의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때 마침 나는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와 한국통사시리즈의 제6편으로 ‘삼별초의 오키나와 건국사’ 제작을 기획하고 있었으므로 차제에 한국의 전통무예인 태권도의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루기로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국이 자랑하는 태권도의 원형인 슈벽치기가 고려의 정예군 삼별초와 함께 오키나와로 진출하여 류구왕국(琉球王國)을 건설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그중 대부분의 독자들이 첫 번째 갖는 의문점인 가라데가 정말 한국에서 건너간 것일까 하는 점과 두 번째로 고려의 정예군인 삼별초가 오키나와 왕국을 건설했가 하는 점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의문점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그중 한쪽의 의문점만 풀려서는 해답을 얻을 수가 없게 되어있다. 따라서 본서는 먼저 삼별초와 슈벽도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오키나와로 진출하여 류구왕국을 건설하였는지 현지답사를 통하여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언어와 종교 등 다채로운 심층취재 결과를 소개하고 고대사에 얽힌 ‘가라(加羅)’의 뜻을 학술적으로 접근하여 해설을 하고, 그 다음 고려군이 기본적으로 습득하고 있어야 할 슈벽도와 삼별초에 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간단한 의문점에서 시작했지만, 그 대답은 대단히 복잡하여 읽는 이들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끝까지 열독을 부탁드린다. 이 글은 태권도의 기술 지도서가 아니고 태권도 기원에 관한 역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무예는 문화의 하나이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고여 있으면 썩는다. 문화도 교류를 통한 새로운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우수성을 잃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와 융합했을 때에 더 나은 문화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태권도이다. 오키나와의 많은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새로운 영향을 미쳤듯이 슈벽도 삼별초나 홍길동 집단의 이주를 따라서 오키나와로 건너가 데의 뿌리가 되었다. 태권도 역사의 진실. 오키나와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태권도의 뿌리는 과연 어디일까? 가라테도 한국 것?
만봉 김산호 화백, <슈벽, 가라테 그리고 태권도> 출간 - 태권도 역사 재조명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테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정작 가라테의 뿌리는 우리나라 고유무술인 슈벽치기(수박, 手搏)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태권도 역사 서적이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 가라테 역시 한국의 무술이라는 내용이다.

도서출판 무카스는 태권도 기원에 관한 역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만몽 김산호 화백 겸 민족사학자가 쓴 <슈벽, 가라테 그리고 태권도>를 출간한 바 있다. 저자 김산호 화백은 한국 최초의 SF만화 <라이파이>를 만든 장본인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500여 편의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90년대부터는 한국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만주, 시베리아, 몽골 등 전 세계를 돌며 민족사학을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는데 현지 태권도장 간판이 하나같이 ‘코리안 가라테’를 달아 놓은 것이 이상하게 여겨 언젠가 태권도와 가라테에 얽힌 엄청난 오해를 풀길 고대해 왔다. 그렇게 4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김산호 화백은 한국이 자랑하는 태권도의 뿌리는 장구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수벽치기’로 발전되어 내려왔다고 말한다. 많은 사범들이 태권도는 일본의 가라테에서 왔고, 가라테는 오키나와에서 발생했다고 믿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엄청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태권도 기원에 결정적인 장소가 되는 오키나와를 비롯한 주변 섬을 돌아 과거 행적을 파헤쳤다.

고려군 삼별초가 몽골제국의 침략을 맞서 싸우다 제주도를 거쳐 일본 오키나와로 망명한다. 고려군은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격투하는 수벽치기를 의무적으로 연마했는데 이 기술이 오키나와에 자기방어 무술로 뿌리를 내린다. 이후 수벽의 기술을 토대로 가라테를 생겨난다.

일본에서 가라데의 ‘가라’는 한국을 뜻한다. 그래서 ‘당수(唐手)’로 고쳤으나, 이 또한 발음은 가라테다.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과 전쟁을 하면서 당수를 공수(空手)로 바꾸게 된다. 이것도 발음이 가라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가라데’라는 것이다.

태권도는 한국에 초기 일본 유학생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워 한국으로 돌아와 가라테에 없는 다른 술법과 택견의 발차기를 접목해 탄생시켰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역사를 어디서도 배울 기회도 없고, 그런 학교도 없어 가라테가 일본 고유 무술로 안 것이다.

김산호 화백은 “지금의 수박도와 태권도는 같은 것으로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다 슈벽이다. 수박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몽땅 다 수벽이다”며 “그래서 태권도, 가라테, 택견, 유도 등은 모두 슈벽에 하나다”고 말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국수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책을 보지 말고 일본책을 봐라. 일본에 일본서기가 있다”며 “일본 왕들이 역사적으로 기록하면서 한(韓)을 이야기할 때는 ‘가라’로 발음한다고 쓰여 있다”고 역사적 근거를 제시했다.

결국, 태권도는 우리나라 고유무술인 수벽에서 가라테와 택견 등의 무술과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진흥재단 이대순 명예 이사장은 추천사를 통해 “태권도계가 안고 있는 큰 과제 중 하나는 태권도의 뿌리와 역사에 관한 이론 정립이다. 태권도와 가라테가 슈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처음 규명한 연구서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앞으로 태권도 역사를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기원 강원식 전 원장은 추천사에서 “태권도와 가라테, 택견 그리고 슈벽과 같은 고래 전통 무예의 관계에 대해 앞으로 우리 태권도인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질정을 알고, 앞으로 국기원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뒤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이 책은 쓴 저자는 태권도 인이 아니다. 태권도 역사를 정립하지 않고 방치되어 온 태권도계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못 해 직접 태권도 뿌리를 역사학적으로 규명해 재조명하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태권도계가 안고 있는 역사를 하루빨리 정립하는데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태권도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대표무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역사정립이 더는 늦춰져서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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