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베테랑 국가대표 이지환, '한국에서 카라테 선수로 산다는 것'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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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베테랑 국가대표 이지환, '한국에서 카라테 선수로 산다는 것'<위원석의 삼위일체> (2020.03.23…

연맹사무처 0 24
<이지환(왼쪽)이 제16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경기하고 있다. 사진=대한카라테연맹 제공>
<기사원문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50&aid=0000000081>

한국에서 가라테 선수를 한다는 것은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하나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다. 국내 가라테를 총괄하는 대한카라레테연맹은 아직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가 아니다. 준회원이다. 이에따른 체육회 차원의 지원 등이 미비하고, 가라테를 하는 엘리트 선수들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하나는 왜 '국기' 태권도가 아닌 '일본 무술' 가라테를 하느냐는 일반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일본을 종주국으로 하는 유도나 검도를 하는 엘리트 선수들은 이런 시선에서 거의 자유롭다. 이 종목의 대체재가 국내에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라테는 태권도와 국제적인 차원에서 경쟁 종목이다보니 이런 시선을 피하기 쉽지 않다. 일종의 '국수주의적'인 편견이 존재하는 셈이다.

국내 가라테에서 매우 독보적인 성과를 올렸던 베테랑 국가대표 이지환(31.울산 상무체육관)도 그동안 이런 고민속에서 운동을 해왔다. 그는 2011년 중국 취안저우에서 벌어진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구미테(겨루기) 60㎏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국내 가라테 선수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듬해인 2012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동급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아시아선수권 2연패도 국내 가라테에서는 처음이었고, 지금까지 없는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이지환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67㎏급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60㎏급에서 두번이나 동메달을 땄다. 한국 가라테는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총 9개의 동메달을 수확했는데 두번 메달을 딴 선수는 이지환이 유일하다. 그런 그도 '한국 가라테 선수'가 겪는 이중고때문에 많은 고민을 거듭해왔다.

이지환은 '삼위일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국내에서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되는 운동이 많지만 가라테는 정말, 정말 비인기종목 중의 비인기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만큼 배고픈 운동은 없는 것같다. 지금은 (가라테를 시작한 이후)시간이 많이 흘러서 덤덤해졌지만 설움이 많았다. 소외감이 든 순간들도 적지 않다. 또 일본 무도를 한다는 식의 편견어린 시선도 많이 안타까웠다. 가라테를 선택해서 힘든 일이 많았고, 솔직히 잠시 후회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런 경험들이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음악에도 수많은 장르가 있듯이 격투기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 가라테만의 매력과 장점이 있다. 국내 팬들도 가라테를 순수하게 격투기나 콤뱃 스포츠(combat sports) 장르의 하나로 봐주시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 차분한 기분으로 이지환의 '가라테 인생'을 들어보자.


◇운동 좋아하는 소년, 가라테와 운명적으로 만나다

이지환은 198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편이어서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대신 그 시간에 친구들과 운동하며 놀기를 좋아했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즐겼다. 동명중 3학년때 동네에 있는 체육관을 다니게 됐다. 이런저런 격투기를 모두 다루던 일종의 종합무술체육관이었다. 그런데 관장선생님이 가라테 대표 출신이었다. 재능이 있어보이는 그에게 가라테라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는 사실 가라테가 무엇인지를 잘 몰랐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 도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 꽤나 많았고, 자신이 직접 태권도를 배운 적은 없지만 가장 친숙한 투기 종목이 태권도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이 흔히 하는 종목과는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가라테와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가라테 대회 첫 출전도 중학교 3학년때 해봤다. 그냥 재미있었다.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고교 2학년때인 2006년 처음으로 청소년대표에 뽑혔고, 스무살이 되면서 성인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 국내 가라테는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팀이나 실업팀이 없다. 대부분 자신이 속한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는 식이다. 체계적인 훈련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차에 국가대표로 뽑혔으니 상당한 자극이 됐다. 마침 당시 국가대표팀은 가라테 강국인 이란에서 지도자를 영입했다. 지금도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아마드 사피 감독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2014 인천 아시안게임때까지 한국 가라테 국가대표팀을 지도했고, 도쿄 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다시 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했다. 이지환은 아마드 감독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체육관 훈련시절에는)훈련양이나 질, 그리고 파트너 등에서 상당히 부족함을 느꼈다. 대표팀에 들어가서 그래도 그런 부분이 많이 해소됐다. 특히 감독님이 이전과 달리 '생각하는 훈련'과 '질높은 훈련'을 강조하셨다. 또 (훈련중)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한국 말로 잘 표현이 안되는 부분에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잊지 못할 두번의 아시안 게임과 두번의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첫 해에는 뚜렷한 성적이 없었지만 기량이 성숙되는 것을 느꼈다. 이듬해인 2009년 태국 방콕에서 열렸던 제1회 아시아무도대회에서 구미테 60㎏급에서 국제 대회 첫 메달(은메달)를 따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그 대회는 종합 무도 대회였는데 좋은 성적을 내면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감독님의 모국인 이란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당시 이란은 세계 챔피언이나 아시아 챔피언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2010년 몬테네그로에서 열린 세계대학선수권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따면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심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동메달을 목에 거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준결승에서 쿠웨이트 선수와 맞붙었는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국이었던 쿠웨이트쪽으로 '편파 판정'이 나왔다는 여론이 많았다. 관중석에서도 야유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결국 패자부활전으로 밀린 뒤 동메달을 따냈지만 고민이 깊어졌다. 실업팀이 없는 국내 가라테의 현실속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뒤 운동에 전념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군 입대를 고민하다가 결국 4년뒤 아시안게임이 홈그라운드인 인천에서 열리니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장을 내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2011년과 2012년은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60㎏급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가라테는 아직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기에, 우리 입장에서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메이저 대회'로 칠 수 있었는데 국내 선수 가운데 아시아선수권 챔피언 배출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는 "아시안게임은 국가별 출전 쿼터가 있어서, 아시아선수권이 지역 최강자들이 다 출전하는 더 큰 대회라고 할 수 있다. 광저우에서 동메달에 그친뒤 고민끝에 입대를 미루고 다시 이를 악물고 운동을 재개했던 때여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꿈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음 해에 대회 2연패에 성공했지만 그때는 오히려 속상한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대회 2연패를 한 뒤)사실 혼자 많이 울었다. 국내 가라테계에서는 사실 큰 일을 이룬 것인데, 주위의 반응이 너무 없었다. 언론의 관심도 없었고, 국내 연맹에서도 그랬다. 물론 내가 무슨 보상을 바라고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일을 일궈냈는데도 주변에서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새삼 서럽게 느껴졌다. 첫 우승때는 그렇게 기뻤는데, 2연패를 하고는 오히려 우울해졌다". 한국 가라테의 슬픈 한 단면이다.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두번이나 금메달을 따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2012년 세계선수권 5위와 2014년 세계선수권 7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세계선수권에 나가면 큰 경기장에 관중들이 꽉 차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오직 한 무대에만 집중된다. 이런 경험이 워낙 없었던 터라, 함성속에서 경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 일본이나 이란 말고도 유럽과 남미 선수들도 전력이나 스타일이 강했다. 2012년 대회에서 동메달 결정전까지 올라갔는데, 그만 아쉽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했다. 결과는 또 동메달이었다. "전력을 다해서 충실히 준비했고, 매 경기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후회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체급의 세계 챔피언이 이란 출신이었다. 이 선수를 넘어서야만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이전까지 상대 전적에서 내가 열세였던 것도 사실이어서, 집중분석을 하면서 준비했다. 준결승에서 만났는데 결국 1점차로 패했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열린 경기에서 많은 관중의 응원을 받았다. 이런 경험도 처음이었다.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가라테가 좋다

인천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 입대를 했다. 가라테로는 상무나 경찰청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일반 병사로 근무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운동을 이어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제대한 뒤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다시 나섰다. 3회 연속 아시안게임 출전이었지만 이번에는 8강전에서 물러났다. "개막 3주전쯤에 무릎 내측인대 일부 파열이 왔다. 완벽한 몸상태로 출전할 수가 없었다. 몸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책임이 컸다. 좋은 컨디션으로 나섰다면 후회는 없었을 텐데 부상을 안고 경기를 뛴 것이 안타까웠다."

제대 이후 기대한 만큼 경기력이 안올라오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가라테를 사랑하고 있다. 지금은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에 도전중이다. 쉽지 않은 목표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다. 랭킹 포인트를 올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고 5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최종선발전을 일단 목표로 하고 있다. "내가 처음 가라테를 시작했을 때도 이 종목이 올림픽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계속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실제로 (정식 종목 채택을 두고)투표도 몇번 이뤄지곤 했다. 그러다가 이번 도쿄 올림픽에 처음 가라테가 정식 종목이 됐다. 전세계 모든 가라테인들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올림픽 출전을 꿈꾸지 못했던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땀을 흘리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지환은 2008년 이후 지금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가라테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반면 이 운동을 통해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국가대표가 되어도 가라테 선수들의 어려움은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올림픽 포인트를 쌓기 위한 국제 대회 출전도 자비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대표 수당으로만으로 해결이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지환은 가라테가 좋다. 그는 "가라테 종목에 무조건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종목이 어느 정도 국제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만큼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그동안 힘든 길을 걸어왔지만 열심히 했고, 스승님이나 동료들과 함께 노력했던 과정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앞으로 가라테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울 생각"이라며 활짝 웃었다.


기사제공 위원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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