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카라테 이것이 궁금하다(하편)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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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카라테 이것이 궁금하다(하편)<위원석의 삼위일체> (2020.03.19.)

연맹사무처 0 49
<한국의 에이다 웡이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가라테 가타에서 시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사원문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50&aid=0000000080&redirect=true>

'삼위일체'는 '가라테 이것이 궁금하다' 상편에서 가라테의 역사적 기원과, 태권도에 대한 '가라테 유입설'을 두고 벌어진 논쟁을 소개했다. 이번 하편에서는 가라테의 세부 종목인 가타와 구미테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라테를 서구사회에 널리 알린 한국인 최영의의 이야기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가라테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가라테, 때리지 않아서 더 어렵다?

가라테의 세부 종목은 가타(型)와 구미테(組手)로 나뉜다. 가타는 한명의 선수가 가상의 적과 맞서 방어하고 반격하는 자세를 시연하는 것이다. 누가 더 완벽한 자세를 펼쳤는지가 중요하다. 태권도로 비유하자면 품새에 해당된다. 구미테는 두 명의 선수가 3분의 시간 동안 겨루기를 펼치는 것이다. 유효타를 통해서 더 많은 점수를 얻은 선수가 승자가 된다. 태권도로 친다면 대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라테와 태권도가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은 겨루기를 할 때 나타난다. 태권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격투기와 달리 가라테에서는 실제로 선수를 타격하면 안된다는 특이한 룰이 있다. 이것을 '슨도메(寸止)'라고 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되, 실제로는 '직전(寸)에 멈추는 것(止)'이다. 그동안 나온 가라테 해설 기사를 보면 보통 5㎝ 앞에서 멈춰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5㎝를 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직전에 멈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가라테 선수들은 '때리되, 때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라테의 경기 장면을 직접 보면 상대방을 가격할 때 '직전에 멈춘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오히려 실제로 타격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상대방에 치명적인 타격은 하지 않지만, 정확하고 빠르게 상대방 몸에 '터치' 정도는 이뤄지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멈추는 것'보다는 '때리는 것'처럼 보인다. 전용태 대한카라테연맹 사무처장은 '슨도메'에 대해서 "직접적인 타격이 이뤄진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직전에 멈춘다기 보다 상대방 몸에 '터치'까지는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두번이나 동메달을 딴 베테랑 국가대표 이지환은 '삼위일체'와의 인터뷰에서 '슨도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5㎝ 앞에 멈춘다거나, 상대방 몸에 닿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 기술이 정확하게 들어가되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주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타격 행위를 할 때 충분한 스피드와 파워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도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가격이 안될 정도로)컨트롤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경기를 보면 실제로 타격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상대방에게 진짜 타격이 이뤄지면 벌칙을 받게 된다."

구미테는 8mX8m 면적의 사각형 모양 경기장에서 진행된다. 흰 도복안에 상반신을 보호하는 보호구를 입고 손에는 글러브(손등만 덮는 천에 얇은 솜이 들어간 형태)를 신고, 발보호대도 착용한다. 타격할 수 있는 부분은 상대의 머리와 몸통뿐이며 하반신을 주먹으로 가격하거나 발로 차는 것은 반칙이다. 3분 단판으로 승부를 가린다. 상대의 머리를 발로 차거나(상단차기), 상대를 넘어뜨린뒤 쓰러진 상대의 머리나 몸통을 가격하면 '잇뽄(한판)'으로 3점이 주어진다. 상대의 몸통을 발로 차면(중단차기) '와자아리(절반)'으로 2점이 주어진다. 상대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하거나(상단 지르기), 상대의 몸통을 주먹으로 가격했을 때(중단 지르기)는 '유코(유효)'로 1점이 주어진다. 경기 도중 8점 이상 차이가 나면 우세승으로 경기가 바로 끝난다. 점수가 같으면 심판의 판정으로 승부가 결정된다.

가타는 구미테처럼 딱 정해진 경기 시간이 없다. 대신 출전하는 선수가 시연할 동작을 자신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따라 빠르고 정확하게 펼치면 된다. 가타 동작은 세계가라테연맹이 인정하는 4대 유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게 보통이다. 가타의 각 라운드마다 7명의 심판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무작위로 지정된다(단, 메달결정전의 경우 심판은 해당 선수와 같은 국적이면 안된다).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국내 선수로는 가타에서 처음으로 동메달을 땄던 국가대표 박희준은 "가타는 정확하고 절도있는 자세는 기본이고 강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연계하면서 시연을 펼쳐야 한다.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는데 보통 3분이 넘거나, 약간 모자라는 시간(2분40초 또는 3분30초) 동안 시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확한 테크닉은 기본이고 여기에 예술성을 더하고 힘을 표현해야 한다. 강약 조절을 통해서 부드러움과 강함을 함께 연기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세계가라테연맹의 가타 경기 규칙에 따르면 평가 기준은 기술 능력, 스탠스, 기법, 전환 동작, 타이밍, 올바른 호흡 등을 중요하게 본다.


◇가라테에 큰 영향을 준 한국인 최영의와 극진 가라테

앞서 말했듯이 정통 가라테는 '슨도메'가 적용된다. 슨도메를 영어로 표현하면 '논 콘택트(Non Contact)'라고 한다. 하지만 이 기술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한국 사람 최영의였다. 일본명은 오야마 마스타츠(大山倍達). 그는 '슨도메'로는 실제 실력을 알 수 없다고 판단해 진짜 타격이 이뤄지는 가라테를 추구했다. 그것이 극진(極眞) 가라테이다. 영어로는 '풀 콘택트(Full Contact) 가라테'라고 한다. 극진 가라테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정통 가라테 못지 않은 인기와 수련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가라테에 큰 영향을 준 거물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1923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최영의는 어릴 때부터 싸움으로 나날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서 싸움을 해서 상대를 패고 울리면 최영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타일렀다. 그러나 그 다짐은 금세 잊어버리고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는 바람에 퇴학을 당해 전북 지방에서는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단다. 결국 서울에 올라와서 영창중학을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격투기인 가라테의 길을 걷게 되지만 실전 가라테의 완성을 위해서 복싱과 유도도 배웠다.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에 큰 자극을 받은 최영의는 "나도 격투기에서 세계 으뜸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9월 최영의는 일본 가라테의 거물 후나고시의 문하생이 되어 가라테를 배우기 시작했다.  1940년 다쿠쇼구 대학에 들어간 최영의는 가라테 2단이 되어 있었다. 1947년 교토의 마루야마 공회당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가 열렸고 최영의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가라테 경기들은 상대방 몸 바로 앞에서 공격을 멈추도록 되어 있다. 심사위원들은 그 공격의 정확도와 강도를 따져서 승패를 가렸다. 최영의는 우승을 했으면서도 이 경기방식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가라테의 경기 규칙을 받아들일 수 없던 최영의는 결국 실제로 상대방의 몸을 가격하는 극진 가라테 창시의 길을 달리게 된다. 1948년 최영의는 가라테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 지바현의 기요즈미 산에 들어가 산속에서 1년반 동안 수련을 쌓았다.'(고두현 저, '고두현의 스포츠 이야기',p.341~352에서 발췌 인용)

1957년 슨도메 룰에 따른 제1회 전일본 학생 가라테 선수권대회가 열린뒤 1969년에는 전일본가라테연맹 주최로 제1회 전일본가라테선수권대회가 부도칸에서 개최됐다. 최영의도 바로 이해 자신이 창시한 극진 가라테의 제1회 오픈토너먼트 전일본가라테선수권대회를 도쿄체육관에서 열어 보호구를 입지 않고 직접 타격을 허용하는 '풀 콘택트 가라테'의 문을 열었다.

최영의는 이소룡(브루스 리)만큼이나 유명한 동양의 무도 스타였다. 그가 맨손으로 황소의 뿔을 꺾었다던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무술의 강자들과 순회 대결을 펼쳤다는 일화 등은 꽤나 유명하다. 그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다. 일부에서는 최영의가 가라테를 대중화시키고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가라테가 이렇게 미국 대중(서양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의 의식세계에 신기로 자리잡게 된 것은 50년대 신의 손(God's Hand)이라는 격찬과 경이를 불러일으킨 가라테의 대사(大師) 오야마 마스타츠라는 개인의 카리스마 덕택이었고, 이 오야마는 일본인이 아니라 전라도 김제 출신의 순 한국인 최영의라는 인물이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52년 3월부터 11월까지 일본 유도대표 엔도 코키치(원래 프로레슬러)와 함께 미국 순회 시범공연을 하게 되는데, 위스키병을 공중에서 산산조각내는 신기를 펼치는가하면 당대 최고의 프로복서들과 프로레슬러들을 연전연승 모두 한방에 아웃시켜버렸고, 주최측들은 최영의의 싸움 장면을 테레비에 방영시켰는데, 이것이 가라테가 신비한 동양무술로서 미국 매스미디어에 등장하게 되는 최초의 계기가 된 것이다. 이로써 최영의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라테 마스터가 되었다.' (김용옥 저,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p.98~99에서 발췌 인용)

최영의의 활약은 1970년대 소년잡지 '새소년'에 고우영이 그린 만화 '대야망'으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당시 '대야망'에서 최영의는 태권도의 달인으로서 가라테를 포함한 전세계 다양한 무술의 고수들을 연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태권도를 국기로 밀었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비록 만화속이지만 '가라테의 명인'이 '태권도의 달인'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가라테를 백안시하고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1980년대 초중반에도 여전했다. 1984년 당대의 청춘스타 랄프 마치오가 주연을 맡은 청춘영화 '가라테 키드'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는데,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할 때는 타이틀이 '베스트 키드'로 바뀌었다. '가라테'라는 말이 주는 왜색 분위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영화에 랄프 마치오의 스승인 '미야기 선생'역을 맡은 팻 모리타의 실제 모델 데무라 후미오의 일대기 '더 리얼 미야기'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한국 가라테는 도쿄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낼까?

가라테가 아시안안 게임에서 정식 종목에 채택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때였다. 개최국 일본의 노력 덕분이었다. 마치 태권도가 1986년 서울 대회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된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은 더 큰 차이가 났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올림픽 정식 종목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반해 가라테는 꽤나 늦었다.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 올림픽때도 정식 종목 후보에 올랐지만 태권도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최종 투표에서 좌절됐다. 결국 2020년 도쿄 올림픽때 개최국 어드밴티지 덕분에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수 있었다. 태권도보다 무려 20년이나 늦었다. 하지만 2024년 파리 올림픽때는 다시 정식 종목에서 퇴출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번 도쿄 대회는 가라테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워낙 크고, 이 종목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가라테 발전은 늦은 편이다. 국내 시장에서 유망한 어린 인재들이 무도 스포츠 가운데 가라테 보다 태권도를 선택하는 것은 어찌보면 합리적 판단이며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그런 어려움속에서도 한국 가라테는 2002 부산 대회에서 처음으로 동메달 1개를 수확한 뒤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만 총 9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 대회때 동메달 3개를 얻고 홈에서 벌어진 2014년 인천 대회에서 최고 성적인 동메달 4개를 획득했다. 2018 자카르타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가타에서 박희준이 동메달을 추가했다.

아직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던 것은 국내 가라테가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탓도 커 보인다. 1969년 대한공수도연맹이 창립되면서 본격화된 국내 가라테는 이후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가 되면서 전기를 마련하는듯 했지만 오랜기간 행정을 장악했던 정도모 전(前) 회장의 연맹 사유화 논란이 벌어지면서 끝내는 2016년 체육회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지금의 대한카라테연맹으로 새 출발을 했지만 아직 체육회 준회원 단체에 머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 있다.

대한카라테연맹의 전용태 사무처장은 '삼위일체'와 인터뷰에서 "아직 국내에서는 가라테를 전문적으로 하는 실업팀이나 학원팀이 없는 실정이다. 클럽이나 도장에서 운동을 배우는 형태다. 전문 선수는 약 200~250명 정도이고 생활체육인이 3000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앞으로 유소년 레벨부터 저변을 확대하고,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을 통해서 가라테 인구를 확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여전히 가라테가 일본 무도라는 선입관에 입문을 꺼리는 분위기가 많다. 이런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유도나 검도같이 일본을 종주국으로 하는 다른 무도에는 이런 현상이 없는데 가라테에만 이런 시선이 있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일본이 잘하는 종목에서 일본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극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가라테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가라테의 이미지를 높여 유청소년층의 입문을 유도하고 동호인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번 도쿄 올림픽은 한국 가라테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가라테 종목은 오는 8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일본 무도의 최고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도칸에서 벌어진다. 도쿄 올림픽에서 걸린 메달은 총 8개다. 구미테가 6개(남녀 3개씩), 가타가 2개(남녀 1개씩)이다. 각 세부 종목별로는 전세계에서 10명씩 출전권을 얻게 되는데 7월초에나 본선 엔트리가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한국은 가라테 강국인 이란 출신 아마드 사피 감독의 지휘아래 남자 7명, 여자 5명의 대표선수들이 도쿄 본선행에 도전하고 있는데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가타 동메달리스트 박희준이 유력하게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지만 구미테에서는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오는 5월 8~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 예선 최종전이 도쿄행의 분수령이다. 박희준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 꼭 출전해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국내에서도 가라테가 널리 알려지기 위해서 올림픽에서 꼭 내 몫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가라테의 종주국인 일본 도쿄의 한복판에서 과연 한국 가라테는 웅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기사제공 위원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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